[마흔여덟번째 리뷰] 검미성 - 왕도사전 리뷰
내 취향 저격의 검미성 작가님의 첫 출판 소설인 왕도사전이다.
최근 이 작가님의 모든 소설을 탐독 중이다.
유진성 작가님이 내 유쾌한 부분의 최애라면, 내 음습한 부분의 최애는 검미성 작가님이다.
나와 정말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실 것 같은 작가님.
소설을 읽으면서 별것 아닌 것에도 울고 웃고 이만큼 감정몰입을 한 글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네이버시리즈에서 연재하는 망겜의 힐러 진짜 재밌습니다.... 꼭 보세요.
이 소설은 확실히 작가의 초기작이다 보니 대중의 테이스트에 부합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확실히 검미성 작가는 후기작으로 올수록 자신의 음습한 자아를 대중이 받아들이기 좋게 써내는 재주가 발전했다.
그치만 내 취향에는 후기작들과는 또다른 맛이 있어 비슷하게 재밌었던 소설.
우선 이 작품의 파워밸런스는 충분히 비현실적이지만, 어딘가 현실적이다.
아무리 금강불괴에 절세고수라도 폭탄 한방이면 훅 가고, 당가의 최고수가 던지는 암기가
단순한 철갑옷에 막히며 아예 검기 같은 건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된다.
흔해빠진 거리의 약장수였던 왕삼은 우연한 계기로 한 죽어가는 도사의 도관을 이어받고 도의 길에 들어선다.
마을사람들은 대접해주지만 자신은 사이비라는 생각에 계속 양심에 찔려하며 활동하는 것이 재밌다.
몇백년 된 도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독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충분히 능력이 있는데
자신만은 계속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며 상황에 질질 끌려다니는 그 맛이 정말 일품.
작가님이 군대 가기 직전에 썼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세계가 정말 불합리할 정도로 주인공을 몰아붙인다.
먼치킨적인 능력으로 어떻게 어떻게 해결은 해나가지만 주인공은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점점 바뀌어간다.
고구마라고 싫어할 사람이 대부분이겠다만, 진짜 이 맛에 보는 소설이다.
능력 있는 개인과 세계의 대립이라는 흔하디 흔해 빠진 구조를 가져와 개인의 파멸로 끝내버리는
이 음습한 테이스트는 정말....
이 이야기의 선악은 그야말로 혼돈이다.
서로가 각자만의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하지만 결국 파멸하며 그 사실관계를 확실히 서술하지 않기에
결국에 누가 옳았는지 누가 틀렸는지, 혹은 선인인지 악인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들다.
굳이 따지자면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악인이다.
다른 소설에서 보이는 무결한 선인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다들 속내를 숨기며 꿍꿍이가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이해가 가기에 얄밉고 미울지언정 증오스럽진 않다.
그리고 이야기가 점점 진행됨에 따라 순진한 도사에서 세계에 휩쓸려 타락해가는 취허자의 모습은 백미다.
큰 힘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몰락하는 그리스의 비극과도 같은 이야기.
실제로 이 소설의 제법 유명한 강자들은 몇백년을 살아왔든, 전설의 경지를 이룩했든 결국 철저하게 파멸한다.
주인공의 주변인물들조차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왕삼이 풍파를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마저 살해하고 정신적으로 타락했을지언정
모든 것을 얻었다는 것은 가장 큰 아이러니라 하겠다.
작품 제목도 왕삼 + 도사 또는 왕이자 도사인 왕도사 이 두가지를 모두 의도한 제목이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제자에게 환진신공을 불살라 바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우면서 그것이 주인공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성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검미성 작가님의 소설은 분명 세계관 최강자들이 주인공임에도 그들이 너무나 연약해보인다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은 나에게 정말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찌질하고 우울하며 결단력이라고는 없지만 고뇌하고 불합리할 정도로
비정한 세계와 맞서는 모습에는 응원을 보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는 박수를 칠 수 밖에.
아 그리고 후반부부터 슬슬 송과체가 또 나와서 뇌 파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전혀 거부감 없지만 검미성 작품에서 굉장히 호불호 갈리는 요소이니 참고하면 좋겠다.
별점 4.0 / 5.0
별점 기준
4.9~5.0 : 완벽에 가까움
4.6~4.8 : 올타임 레전드
4.1~4.5 : 인간계 최고수준, 명작
3.1~4.0 : 챙겨보면 좋을 소설, 수작
2.1~3.0 : 킬링타임으로는 그럭저럭 볼만한 소설
1.1~2.0 : 읽을수록 시간이 아까워지는 소설
0.1~1.0 : 종이가 아까운 소설, 무료 연재분만 보고도 충분히 거를만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