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번째 리뷰] 검미성 - 21세기 반로환동전 리뷰
첫번째 리뷰를 그 당시 가장 재밌게 읽었던 광마회귀로 시작했었다.
그럼 쉰번째 리뷰도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로 해야되지 않을까!!
하여 쉰번째 리뷰는 21세기 반로환동전이다.
물론 요즘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검미성 작가님의 작품이다.
검미성 작가님의 작품은 정말 짧다.
제일 긴 망겜성이 200화 조금 넘겼으니, 오백편은 가볍게 넘기는 소설이 많은
현대 웹소설 시장에서 제일 짧은 소설들만 써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게 내용이 부실하다거나 기승전결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소설에 버릴 게 하나도 없고 짧다보니 여러번 읽어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전작들은 그 음습함을 못버려서 호불호를 많이 탔다면, 요즘은 그 음습함을 유쾌함으로 잘 버무려서
호불호까지 없는 작가로 거듭나고 있다 생각한다.
주인공인 허풍개(이자 무적비비탄이자 무적무적자)는 일제시대부터 살아온 도사이다.
기근에 가족을 모두 잃고 산에 올라 죽으려했으나 우연히 아내를 만나 도를 닦게 되었으나
그 아내와 자식조차 허무하게 세상을 떠버린다.
이 과정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주변에 소속감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또한 욕망에 초연해져 동자공도 익히고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죽지 않는 신선이 되기 위하여 공과격에 집착하며 금욕적이고 강박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수행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반로환동을 하더라도 인간의 수명은 텔로미어로 인해(!) 130살 정도로 제한되어 있는데,
이 소설은 주인공이 120살에 반로환동을 하며 시작하게 된다.
주인공은 죽음에 대한 강박적인 공포를 갖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앞에 나서기를 꺼리지 않는다.
허풍개에서 무적비비탄으로, 무적비비탄에서 무적무적자로 신분을 두번이나 세탁했는데
이는 주인공이 주위에서의 평가와는 별개로 자신의 무공수위나 전적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캐릭터성은 기가 막힌다.
검미성 소설의 주인공들은 찌질거리고 우유부단하지만 여러 선택을 하며 그걸 극복해나가기도 하고 그 상황에 몸을 맡겨
타락해버리기도 하는데, 그 고민 과정을 계속 보여주어 그 결과가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응원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소시민적 주인공을 계속 내세워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전략일 수도 있겠다.
허풍개는 끝까지 번뇌하면서도 결국 길을 벗어나지는 않아서 끝까지 응원하게 한다.
가장 암걸리는 에피소드에서 결국 주인공은 또 호구처럼 수명까지 깎아가며 도와주고,
그 결과 의도치 않게 기가 정순해지며 오히려 경지가 올라가는 일도 생긴다.
결국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이 주변 사람들은 물론 적들까지 같이 끌어올려 흐뭇함을 유발하는 건 덤이다.
마지막에 계속 자신에게 묻던 하늘의 도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답을 얻는 부분은 정말....
소설 설정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무협소설에는 화약총기가 애초에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우습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에서는 아무리 절세고수라도
반사신경이 좋고 빠를 뿐이지 총 맞으면 구멍 뚫리고 죽는 건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총알을 잡아내는 기예를 펼칠 때 전무림이 큰 충격을 받았을 정도이다.
그리고 무림인들을 깡패로 묘사하면서 그리 긍정적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그 연장선에서, 위에 무적무적자, 무적비비탄 등의 별호를 보면 알겠지만 별호도 말장난처럼 웃기게 짓는다.
그 외에 불리는 별호들을 보면 국뽕대협, 닛뽄대협, 박회장(박씨 아님), 천마 (천재마법사) 등 멀쩡한 게 하나도 없다.
그나마 멀쩡한 건 월녀 정도?
말하고보니 또 월녀와의 에피소드가 사람 눈물을 질질 짜게 한다.
월녀를 구하며 했던 말은 정말... 백년의 시간이 있었던만큼 단순하지만 더욱 애절했다.
월녀 하아린과의 관계는 사랑과 우정, 제자에게의 관심 등등이 합쳐져서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인데
이게 진짜 너무 애틋하고 안타까워서 또 사람 심금을 울린다.
암튼 그런 식으로 무림을 깡패에 가깝게 묘사하며 무림의 어두운 면을 많이 보여준다.
21세기까지 무공이 남아있다면 딱 이렇지 않을까라는 느낌.
전체적으로 이영도 소설이나 묵향 등에 대한 패러디도 많이 들어가있다.
만력제라는 인물이 고금제일인으로 묘사되는데, 그는 허공답보를 시전하며 승천하여 전설이 되었다.
올라가면서 떠다니는 고래라도 보는듯이 하늘 저편을 흥미있게 봤다느니,
이를 묘사하면서 승천한 만력제가 돌아와도 어쩌니 하는데,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누가 봐도 티나한과 하늘치.
자신을 천마라고 소개하는 소녀의 검은 이름은 목혼이며 강철로봇을 타봤다느니, 태허무령심법을 익혔다느니
심지어 이름도 묵향이 변했던 소녀 라나에서 그대로 따온듯하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의 패러디도 많을테니 읽어보면서 찾아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소설이 굉장히 짧은만큼 제대로 완결을 못냈거나 습작처럼 느낄 사람들이 있을텐데,
절대 그런 걱정하지 말고 일단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초반 자극적인 설정으로 얻은 인기에 편승해 질질 끌어대는 요즘 소설들과 달리 압축된 사건 속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았고, 특유의 여운 남는 완벽한 결말은 당신을 검미성 작가님의 팬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별점 4.5 / 5.0
별점 기준
4.9~5.0 : 완벽에 가까움
4.6~4.8 : 올타임 레전드
4.1~4.5 : 인간계 최고수준, 명작
3.1~4.0 : 챙겨보면 좋을 소설, 수작
2.1~3.0 : 킬링타임으로는 그럭저럭 볼만한 소설
1.1~2.0 : 읽을수록 시간이 아까워지는 소설
0.1~1.0 : 종이가 아까운 소설, 무료 연재분만 보고도 충분히 거를만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