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세번째 리뷰] 검미성 - 신을 먹는 마법사 리뷰
(이건 내가 생각한 미르가 아니야.,...)
스포일러가 있으니 민감한 사람들은 뒤로가기를 누르시기를 바랍니다.
4연검... 이번에도 검미성 작가님의 초기작 신을 먹는 마법사이다
내가 익숙해진건가, 이제 별로 다크하게 안느껴지는데 잘 뜯어보면 엄청 다크하다.
배경은 신석기시대, 한반도는 신이라 불리는 거대한 동물들에게 통치되고 있고
이 신들은 인간의 고기를, 그 중에서도 영이 위치한 송과체를 섭취하여 그 신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 신들은 동물이라는 기본 우월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실제로 거대화, 경질화 등의 특이한 능력들을 갖추고 있고
포식을 통해 인간만큼 뛰어난 지능까지 갖게 되니 일반인이 대적하긴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강력하다.
자연히 사람들은 그 신들에게 자발적인 인신공양을 하고 그 신들이 먹을 식량을 충분히 하기 위해
화전도 매우 무리하게 하고 있어 한반도가 여러모로 축나고 있다.
여기서 21세기의 대마법사 이미르가 우연한 기회로 신석기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 이미르는 현 시대에서 몇 없는 대마법사로 취급 받지만, 그 실상은 남들보다 조금 더 강력할 뿐이고
마법 또한 가장 우월한 학문이 아니고 마법사는 다른 과학자들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다.
마법이 과학에 비해 특별히 발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는 마법이 없던 시대에 모쏠로 살다 죽은 첫번째 생 이후
환생하여 죽도록 노력해서 학문적으로는 매우 높은 성취를 이룬 이미르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이 시대에서는 대부분의 영혼과 마나가 영계로 다 빨려가 일반 마법사들이
나름 대마법사라 불리는데도 가장 아끼는 제자 취업 하나 시켜주지 못해서 절망한 이미르는
그 날 꿈에서 또다른 자신의 말을 듣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한반도는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영계의 존재가 없어 다른 사람의 마나와 영혼을 아주 쉽게 흡수할 수 있어
이미르는 여기서 마법의 시조로 알려진 오딘보다 훨씬 위대한 마법사신으로 거듭나려고 한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대로 한반도는 신이라 불리는 식인괴물들에게 통치되고 있었고
이미르는 이들을 죽여 더 큰 영성과 마나를 가지려 한다.
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인간을 그냥 자신들의 힘을 키울 식량으로만 보는
신들의 행태에 분노해 사람은 하나도 죽이지 않고 신들만을 죽여 힘을 키우려하고
여기에는 21세기의 발달한 마법 체계를 익히고 있는 이미르의 지식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엔 아주 많은 신화들이 나오고 이들이 실재했다고 말하고 있다.
올림포스 12신들은 인간이긴 하나 동족을 포식하여 신으로 거듭난 케이스이고,
오딘 또한 동족을 포식하여 신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나 어느 정도 영성을 가진 동족포식자이다.
이들은 중국 위치를 차지한 강력한 신 황제를 크로노스라 부르며 적대하고 있다.
세계관 최강자인 황제도 아주 오랜 기간 인신공양으로 힘을 쌓아온 신이지만
신화에서처럼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누구보다 인간을 위하는 완벽에 가까운 신이다.
이 강력한 황제가 힘을 나눠준 게 사신수, 한반도의 시초라고 인정하여 이미르에게 내어준 이름이 반고인 등,
여러 신화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다.
작중 신들의 용에 대한 집착이 상당히 재밌다.
주인공의 능력 중 가장 특별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게 용으로의 변신인데,
뱀신이 용으로 보이고 싶어서 기름 먹인 나무뿔을 달고 다니고
사슴신은 자신의 거대한 뿔이 용의 증거라고 우기며 악어신은 자신이 용의 말예인 교룡이라 우긴다.
아 근데 여기서 이 모든 신들은 식인을 하여 아래턱이 사람처럼 변해있는데,
이를 자주 묘사해서 상상해보는 게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의 북유럽 신화 사랑은 여실히 드러난다.
북유럽 신화 자체가 오딘이라는, 동족포식자의 머리에서 거의 창작된 신화라고 이야기하는데,
눈을 내주고 이미르에게서 지식을 얻었고 결국 이미르를 죽여 그 피와 살로 세상을 창조했다거나
광철을 흡수한 직후 영계를 목격하고 세계수와 니드호그의 신화를 창조해내는 등
어떻게 우리가 알고 있는 북유럽신화랑 연결을 시키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다.
사실 모든 신화의 시작들도 한 상상력 뛰어난 음유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그저 열등감에 찌들어 마법신으로 숭배받으려 했으나 점점 그 숭배에 대한 책임을 깨닫고 고뇌하며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어떻게, 얼마나 성장해나가는지를 보는 것이 이 소설을 보는 키포인트라 하겠다.
작중의 현대에도 오딘이 이미르를 죽이고 세상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여
죽이려하다가 결국 안죽이고 제자로 들이는 것은 매우 고구마로 보일 수 있지만
이 또한 자신이 잘못됐을 경우를 대비한 인간들을 위한 마지막 안배로
마지막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는 거의 현자로 거듭난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을 아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소설 설정 관해서도 참 치밀하다 싶은 게 많은데,
이미르가 원래 마법 없는 우리 세계의 인간에서 마법이 있는 세계에 환생했다는 건
다른 작품들처럼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현대인'의 기억을 떠올려 극복한다는
편리하면서도 데우스엑스마키나적인 설정을 끼워넣기 위함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 주인공이 노력할 수가 있다.
아예 다른 두 세상 자체가 평행세계를 증명하고 있고 따라서 주인공이
오딘에게 허무하게 살해당하는 미래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대비하고 힘을 키우는 것 자체가
평행세계가 존재하여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또다른 평행세계는 없었고... 결국 주인공이 아는 미래대로 흘러간다.
이는 매우 허무주의적이기도 하지만 순환적이며 그 미래를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이 드러나기 때문에 매우 인상 깊다.
이 부분이 참...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하지 못하기에 불완전한 해결책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이게 엄청 안타까우면서도 이를 써내려가는 은근 따뜻한 시선이 계속 검미성의 소설을 찾게 만든다.
또, 보통 다른 소설에서는 외전에서 결말 이후 시점을 주로 서술하는데 검미성의 외전은 참 특이하다.
이미르가 곧 영혼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아홉가지의 나무, 영계 그 자체,
세계수가 될 것이라는 것은 작품을 보면서 계속 예측할 수 있다.
처음 영계를 만들 때 나무의 형상인 것도 그렇고 본질을 보는 능력들이 이미르를 나무로 본다는 점 등.
그렇게 죽은 후 영계, 세계수 그 자체로 거듭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외전에서는 이미르의 성격과 행동원리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설명한다.
하... 21세기 반로환동전에서도 그랬지만 이게 여운이 장난이 아니다.
주인공이 내렸던 하나하나의 선택들과 중간중간에 하던 말들이 이렇게 연결이 되니
다시 읽을 때마다 마음이 뭔가 먹먹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정도 뼈대를 다 잡아놓고 집필을 시작해서 의도대로 끝냈다는 게 잘 보이는 소설이다.
나한테는 망겜성보다 훨씬 재미있고 여운이 너무 많이 남았으며 세계관도 좋았던 소설이지만
다크한 세계관 자체, 이야기 전개와 주인공의 성격 때문에 호불호는 훨씬 더 갈릴듯하다...
근데 송과체가 그렇게 극혐인가? 난 왜 잘 모르겠지...ㅎ;;
물론 나에겐 너무 좋았지만 대중성도 소설의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보기 때문에,
별점 3.6 / 5.0
별점 기준
4.9~5.0 : 완벽에 가까움
4.6~4.8 : 올타임 레전드
4.1~4.5 : 인간계 최고수준, 명작
3.1~4.0 : 챙겨보면 좋을 소설, 수작
2.1~3.0 : 킬링타임으로는 그럭저럭 볼만한 소설
1.1~2.0 : 읽을수록 시간이 아까워지는 소설
0.1~1.0 : 종이가 아까운 소설, 무료 연재분만 보고도 충분히 거를만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