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임소설을 안좋아하는 편이다.
소설 내용에 몰입하다가 아 그래봤자 게임이잖아하고
순간적으로 자각하는 순간이 오면 몰입이 다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달빛조각사에서 특히 심했는데, 죽으면 심지어 게임에서도 금방 부활하는 세계관에서
너무 비장한 분위기가 나오면 금방금방 몰입이 풀려버렸다.
소설 자체가 현실이 아닌데 무슨 현실이랑 게임을 따지냐하면 반박할 수 없지만,
그냥 내 기분이 그래!
근데 이 소설은 조금 논외인 편이다.
가상현실게임, 좀비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물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는데,
가상현실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일단 현실의 주인공 몸은 팔려서
통속의 뇌 신세이고, 이 가상현실 세계를 유지하는데에도 돈이 필요해서
게임 스트리밍으로 돈을 벌지 못하면 뇌조차 폐기당하기 때문에
정말로 목숨을 걸고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거다.
거기다 조금은 스포일러이기도 하지만 결국 이 세계관도 나중에는 분리되어
일종의 평행세계가 되어버리고 너무 몰입하지는 않는
쿨한 주인공의 성격 때문에도 이런 문제가 덜했다.
그래서 평소 게임소설을 안좋아하던 독자들도 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주인공은 막장인 부모님에 의해 몸이 대기업 총수에게 팔려 가상현실세계에서만
겨우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신세이다.
그 의식조차 돈이 없으면 유지할 수 없어 스트리밍을 통해 돈을 벌어야한다.
이 뇌들을 모아놓는 곳이 납골당이고, 따라서 주인공은 그 안의 어린왕자인 것.
다행히 주인공의 TOM 적성은 S등급으로 거의 세계최고라 봐도 무방하여
매우 현실적인 수준의 가상세계를 구현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나름 인기있는 방송을 진행 중이다.
여기서 TOM이란 Theory of Mind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쉽게 한단어로 표현하자면 공감능력이라 보면 된다.
이 TOM 수치가 NPC들과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므로 주인공의 세계는 현실적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어색한 세계보다 주인공의 세계는 보는 맛이 있고,
놀랍게도 작가는 현실, 가상세계 (좀비 아포칼립스), 이를 보는 시청자들의 반응
이 세가지를 번갈아가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러 이야기를 시점을 달리하여 풀어내는 건 정말 힘든 일인데
이걸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내가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를 높게 평가했던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gandara 그 사람은 시간시점뿐만 아니라 인칭까지도 자유자재로 서술을 했어서...
거기에 문장까지 굉장히 수려하다.
이거보다 확실히 문장이 더 뛰어난 작가는 이영도, 전민희 같은 1세대나
최현우 정도 말고는 확실하게 꼽기 힘들 정도라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다.
그 수려한 문장으로 좀비 아포칼립스 특유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휘몰아치는 현실과 게임의 전개에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고찰까지
개인적으로 소설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처음 읽을 때도 절망적으로까지 보이던 초반의 전개에서
중반 이후 분위기가 많이 변하고 데우스엑스마키나적 전개가 좀 보인다 생각은 했는데,
두번째 읽으면서 초반에 나온 여러 떡밥들이 거의 해결이 안된 상태로 완결이 났다는 걸 깨달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역시... 원래 구상한 엔딩을 벗어나 해피엔딩으로 서술했다는 작가의 언급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언급한 엔딩쪽으로 갔다면 내 취향에서는 정말 우주명작이 됐을 것 같은데,
디렉터스컷 같은 걸로 한번 더 내주면 안될까 싶다.
디렉터가 직접 틀어버린 전개긴 한데...
TOM을 끌어와서 설정에 집어넣은만큼 소설 속의 인간관계나 주변인물에도
고심을 많이 했다는 게 느껴지고 좋은 필력으로 전투씬, 디스토피아 사회묘사, 채팅창...
등까지 하나하나 읽는 맛이 있었다.
너무 적나라해서 거부감이 드는 장면도 좀 있었지만, 난 사실 그런 거 별 생각없이 잘 본다.
좀 느린 전개와 너무 세세한 묘사, 그리고 엔딩이 조금 단점일 수 있는 소설이지만
그외엔 모두 장점인 소설이니 실패할 걱정 없이 취향만 맞는다면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별점 4.2 / 5.0
별점 기준
4.9~5.0 : 완벽에 가까움
4.6~4.8 : 올타임 레전드
4.1~4.5 : 인간계 최고수준, 명작
3.1~4.0 : 챙겨보면 좋을 소설, 수작
2.1~3.0 : 킬링타임으로는 그럭저럭 볼만한 소설
1.1~2.0 : 읽을수록 시간이 아까워지는 소설
0.1~1.0 : 종이가 아까운 소설, 무료 연재분만 보고도 충분히 거를만한 소설
'소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순다섯번째 리뷰] 검미성 - 게임4판타지 리뷰 (0) | 2024.04.18 |
---|---|
[예순네번째 리뷰] 컵라면. - 게임 속 전사가 되었다 리뷰 (0) | 2024.04.16 |
[예순두번째 리뷰] 백수귀족 - 지옥과 인간의 대결 리뷰 (2) | 2024.04.14 |
[예순한번째 리뷰] 컵라면. - 무림서부 리뷰 (0) | 2024.04.13 |
[예순번째 리뷰] 가짜과학자 - 철수를 구하시오 리뷰 (0) | 2024.04.12 |